나, 졸업했다. 이제 더이상 학생의 신분이 아니다.

(졸업식날, 골든 미니 드레스와 유치하게 매치시킨 골든 킬힐, 옆에는 같은
과에 있는 단아한 동생)

5.7.2011, 7a.m 자명종이 울리자 냅다 꺼버렸다.

분명 졸업식 리허설 아침 7시 부터 시작이랬는데 학생 신분으로서의

마지막 반항 이다. 어차피 졸업식은 10신데 그깟 리허설 뭐 할께 있다고

새벽부터 사람을 불러? 그리고 10분이 흐르고.

젠장. 이 놈의 직업병. 도저히 양심에 찔려서 못 누워 있겠다.

지난 2년간 음악치료사로서 양성교육을 받으며 치료사의 도덕을 갖춘

착하고 바른 학생으로 재 탄생 했기 때문에 도저히 시간 약속을

어기는건 중죄다. 그냥 벌떡 일어나 졸업화장도 못한채 얼릉 드레스를

걸치고 킬힐은 양쪽 손에들고 슬리퍼를 착용, 용 솟듣 집밖으로

뛰쳐나가 택시를 탔다.

캠브리지에서 찰스리버를 건너 보스톤 유니버스티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지난 4년을 돌아봤다.

음악치료를 공부하면서 힘들어 울고 웃고 하던 나날들.

정말 미친듯이 공부했다. 룸메이트가 혀를 끌끌 찰 정도로.

(졸업식 리허설. 재미난 사실 하나, 이날 상당수의 한국학생들은
리허설이 거의 끝날 때까지 늦게왔다. 신기하게 한국사람만 통크게 늦게오더라)

보스톤 유니버스티 아레나 홀에 도착하니 8시가 아직 않됬다.

아니, 가만히 보니 반 이상이 나처럼 지각이 였다. 갑자기 밀려오는 아쉬움..

그냥 더 잘걸 그랬다. 그나마 다행이 과 친구들과 그룹을 지워 같이

앉았다. 이제 더이상 페이퍼는 없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침 일찍부터 수다를 떠는 묘한 재미가 있었다.

(졸업식장에 다행히 핸드백과 아이폰을 가지고 들어갈수 있었다. 모두 무릎의 에 각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더라. 아니면 그 세시간을 어떻게 견디는고?)

2011년 버클리 졸업식에는 총 908명의 졸업생들이 있었다. 한 학생 당

7명의 졸업식 티켓이 주어지고 대충 수를 따져보면 꽤 어마어마한데

미국 대학교들 중 큰 규모로 톱 10에 드는 학교인만큼 졸업식은

가뿐히 해결됬다.

(엄마, 아빠, 형, 누나,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 친구 모두 모였다)

졸업한 소감은… 시원 섭섭했다. 학생 신분으로 사는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아직 학생이란 방패가 있으니. 이젠 방패 없이 싸워야 하나.

하지만 이제 숙제하고 시험보느라 달달 볶일 일 은 없으니 좋다.

이제 9개월의 인턴쉽만 잘하고, 자격증 시험보고

돈벌어야지. 그리고 대학원에 갈 예정이다.

아자! 이제 사회인이다!

고 고 고!